2화. 새로움의 시작 – 까르의 부르키나파소 일기
이곳은 도시 보보디울라소(줄여서 보보)로 가는 버스 안. 우리나라로 치면 고속버스 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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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틀어진 머리 위 티비에서 ‘마치 잠을 잔다’는 선택지는 없다는 듯 최대치의 음량으로 배우들의 대사가 쩌렁쩌렁 고막을 후려친다. 화면을 보면 신파 드라마 같은데, 이 드라마. 여자도, 남자도, 엄마도, 비밀애인도 배우들이 죄다 화가 난 듯 목청 높여 말한다.
?“용일.. 나 죽을 것 같아. 괴로워…”
?“까르야.. 나도..”
?“이 버스… 베이스가 장난 아니게 빵빵해.”
?“배우들이 전부 화나 있는 것 같아.”
다섯시간 가량의 버스 시간 내내 줄어들지 않는 볼륨 소리에 점점 안색이 안 좋아지는 우리와 반면 방송을 보며 연신 신나게 웃는 샤콜과 승객들.
?“샤콜, 저거 재밌는 거야? 내가 보기에 싸우는 것 같은데??”
내 말에 샤콜은 버스 중앙에 달린 티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상태로 신나게 웃으며 말한다.
?“아냐아냐, 지금 엄청 웃긴 상황이야. 저기 저 여자가~ 어쩌고,,, 그걸 저 남자가~ 저쩌고..”
그렇단다.. 화난 게 아니란다.
?“언제 도착할까…”
모든 게 아득하기만 하다.
?“도착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버스는 우리를 보보에 무사히(?) 내려주었다.
?“자유다, 자유!”
윙윙 울리는 머릿속이지만, 이제 끝이다. 고문의 버스여 안녕! 사방에 모래가 날리는 흙 길 위 수십 대의 오토바이가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이제 나의 춤 스승님 엠마누엘(줄여서 엠마)이 살던 도시 보보에 정말 가까워졌다. 거기에는 우리가 앞으로 두 달간 보낼 집도 있고 엠마의 가족과 친구들도 있고 내가 몇 년간 아프리카 만딩고 춤을 추고 있는 그룹 ‘쿨레칸(Koule Kan)’이 처음 시작된 공간과 보보 쿨레칸 멤버들이 살고 있다.
?“택시를 타자!”
나, 권금, 보섭, 성규, 샤콜. 다섯이 택시 두 대에 짐을 나누어 타고 엠마 고향으로 향한다.
?“계기판이 안 움직이네.”
부르키나파소에서 처음 탑승한 택시는 중고가 중고로 팔리고, 그 중고가 또 중고로 팔린 뒤 온 듯. 작동하지 않는 계기판, 홀라당 사라진 사이드미러, 유리 없이 뻥 뚫린 오른쪽 창문, 푹 꺼진 스펀지에 울퉁불퉁한 스프링이 느껴지는 좌석이다. 이토록 낡은 차를 파는 어딘지 모를 나라가 괘씸하기도 하고. 어떤 나라의 사람들은 티끌 하나 없이 번듯한 모습의 택시를 타고 다니고, 어떤 나라의 사람들은 굴러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택시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이 혼란스러웠다. 이건.. 불공평하지 않나.. 헌데 이 와중에 스피커는 버스 못지않게 강력한 사운드가 택시 밖까지 음악 소리를 쩌렁쩌렁 내보낸다.
?“여기는 스피커 사운드가 다들 빵빵하다.”
보섭이 웃으며 말했다.
?‘잉?’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거침없이 나아가던 기사님. 갑자기 차를 멈추고 작은 보따리를 들고 있던 한 분을 태우신다. 그러더니 조금 가서 노점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한 여성분에게, 목적지를 묻고 또 태우신다. 얼떨결에 택시 뒷자리에 네 명의 사람들이 엉덩이를 앞뒤로 포개고 앉아 있게 되었다. 부르키나파소에서는 거리가 아닌 사람 수만큼 택시비를 받기에 기사는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을 최대한 차에 욱여넣고 가는 것이었다.
큰 길을 달리던 택시가 왼쪽으로 우회해 우리를 한 집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가져온 짐을 내리고 있으니 갈색 흙담에 내 키만 한 철문이 열리고 안에서 소영이 반갑게 웃으며 나온다.
?“안녕 얘들아-!”
?“안녕-!!”
?“들어와, 들어와”
소영을 따라 담 안으로 들어가자 마당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엠마의 그리오 친구들이 신명나는 줄라동 연주와 함께 우리를 반긴다. 발라폰, 피리, 룽가. 멜로디가 가득한 환영 음악에 ‘오와…’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보섭은 곧바로 들고 있던 자신의 젬베를 꺼내 문가에 앉아 같이 연주를 시작한다.
?“아단쎄-!”(어서 와~)
쑥스럽고 아직은 어색해한 마음에 쿰칫쿰칫 몸을 움직이며 박수를 치던 중.
?“쏠렐레오- 쏘띠끼 렐레오~”
?‘어? 아는 노래다!’
?“깜벨레쏘~”
?“쏠렐레오~ 쏘띠끼 레레오”
?“깜벨레쏘~”
이 노래는 내가 쿨레칸 1주년 공연에서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던 노래로. 쿨레칸 파티 때 아미두가 종종 부르기도 했다. 한 명이 앞 절을 부르면 다른 한 명이 뒷절을 부르며 함께 오가며 부를 수 있다. 반갑고 신나는 마음에 마당에 모인 보보 친구들과 함께 서로를 바라보며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하늘로 만세를 하고, 미소 짓고. 함께 춤을 추자 어색함이 하나둘 걷히기 시작한다.
노래가 끝나자 빨라지는 젬베 리듬과 함께 시작된 젬베동 파티 타임! 우리에게 씨익 웃는 미소와 함께 ‘원 안으로 들어와!’ 신호를 보내는 소영. 잔치에서 젬베동이 시작되면 음악가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원을 만들고 안에 한 명씩 들어가 자신의 춤을 추곤 한다.
부끄러운 나는 소영의 신호에 용일을 쓱 민다.
?“으악-!”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나간 용일. 부끄러워하다 이내 활짝 웃으며 리듬에 맞춰 줄라동을 춘다. 뒤이어 권금이 추고. 에이 몰라. 가방을 후루룩 벗고 나도 원 안 으로 들어간다.
?‘쑥스러. 쑥스러..!’
라이브에 맞춰주는 젬베동은 신명나지만 어렵다. 어디에 맞춰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버리곤 한다. 재빨리 기억나는 몇 가지 동작을 해본다. 아이고, 긴장했다. 다 틀리네, 다 틀려! 그러거나 말거나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시끌벅적한 방문에 하나 둘 몰려 들더니 어느 사이, 다같이 웃고 박수치는 잔치가 되었다.
한 차례 그리오들이 준비해준 멋진 환영식이 끝나고. 본격 인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빠삐, 그리오.”
우리에게 멋진 피리연주를 해주었던 분이 인사를 건넨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나는 이드리사 카삼바. 엠마와 함께 쿨레칸을 만든 댄서야. 쏠이라고 불러.”
동그랗고 귀여운 마치 어린아이같이 예쁜 눈으로 우리에게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세상에, 쿨레칸을 만든 댄서라니!
?“우와.. 우리는 한국의 쿨레칸 댄서들이야..!”
?“나는 비비, 엠마의 동생이야.”
?“나는 셱. 비비의 친구이자, 엠마의 친구.”
불어나 보보어를 할 줄 모르는 우리와 영어나 한국어를 못하는 그들 사이 짧은 인사들과 함께 기분 좋으면서도 수줍은 웃음이 오간다.
?“집 구경해봐- 너희 집 멋져! 세봉!”
쏠이 웃으며 우리를 안으로 안내한다.
집은 마당을 중심으로 왼편에 별채 1개. 중앙에 큰 집 하나. 오른편에 외부 수도 하나. 중앙의 집 안에는 3개의 방과 화장실, 부엌, 거실로 나누어져 있는데. 방에는 낮은 매트릭스가 깔려있고, 거실은 무척 넓고, 바닥엔 타일이 깔려있다.
“집 좋다..!”
“깨끗해!” “화장실도 안에 있어!”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탄성이 섞인 목소리. 들어보니 우리가 도착하기 전, 엠마 가족과 친구들이 열심히 청소를 해주었다고 한다.
“까르야, 며칠 동안은 너랑 내가 룸메이트야-!”
소영이 밝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집을 떠나온 후 매일이 새로움과 새로움의 연속이다. 3개월간 홀로 길 위를 떠돌다 환하게 반겨주는 친구들을 만난 요 며칠은 혼자일 때보다 시간이 호로록 명쾌하게 흘러가고 있다. 새롭고 떨리면서 기분이 좋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까. 춤도 많이 추고 친구들도 만나고, 만뎅 문화의 고향인 이곳에서 이들의 삶과 문화를 충분히 느끼다 가고 싶다.